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누군가는 돌로 탑을 쌓고 길을 만든다
한 해의 마무리를 앞두고 있는 11월의 마지막 주입니다. 날씨가 훌쩍 추워졌습니다. 월동 준비는 잘하고들 계신지요. S매거진 마지막호를 맞아 그동안 연재를 통해 지면을 빛내준 필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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그는 카메라로 듣는다
사진·글: 권혁재 출판사: 동아시아 가격: 2만7000원 2011년 11월 27일, 중앙SUNDAY S매거진을 신문에서 잡지 형태로 전면 개편하면서 야심차게 준비한 연재물 중 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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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'뒷담화'] 요리 명장 박효남의 손가락
셰프(chef) 전성시대다. 요즘 방송·신문·잡지를 점령하다시피 했다. 연예인에 버금가는, 어쩌면 능가하는 스타로 발돋움하고 있다. 그들의 등장을 보면서 항상 떠오르는 이가 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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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사진전문기자의 뒷담화] 이돈태의 촌놈 정신
1월 14일 오후 2시, 경제편집 데스크의 다급한 전화를 받았다. “영국 디자인 회사 탠저린의 이돈태 공동대표 사진 있지?” “있기는 있는데 ….” “이 대표가 삼성전자 디자인경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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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오태석의 현실과 무대 사이
“열한 살 때 6·25를 겪었습니다. 와세다 대학 나온 변호사였던 아버지, 붉은 완장 두른 군인들에게 끌려갔습니다. 제게 ‘현실’이란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뀔 수 있는 불안한 존재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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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Editor’s letter] 새로운 만남을 위해
중앙SUNDAY S매거진이 지금처럼 잡지로 나온 것이 2011년 11월 27일자부터 입니다. 그전까지는 신문이었죠. 이런저런 조정을 거쳐 지금처럼 만들어온 지도 2년이 다 돼갑니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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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‘왼손’의 기적, 최선배
“트럼펫 연주자로 한창인 삼십대 중반, 오른손을 다쳤습니다. 재즈를 위해 독학으로 이룬 연주가의 꿈은 포기해야 했습니다.여덟 살 꼬맹이 때부터 들어왔던 재즈. 삶의 전부였기에 좌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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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『만다라』김성동의 집념
“제 삶, 돌판 중판 글판, 삼판입니다. 프로기사가 되려 했던 돌판, 마지막 관문에서 탈락했습니다. 좌절했습니다. 승려가 되려 했던 중판, 단편소설 ‘목탁조’가 불교를 비방했다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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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희망 전도사 서민
“아주 돋보이는(?) 얼굴 생김 덕에 지독한 놀림을 받았습니다. 친구도 없었습니다. 자존감 자체가 없을뿐더러 심지어 세상에 백해무익한 존재라 생각했습니다. ‘내 인생은 먼지 같다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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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무관심 파괴자 이종건
“저더러 ‘건축계의 독설가’라 합니다. 맞습니다. 공적인 분노, 그 대가로 얻는 외로움과 고달픔, 오히려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. 비평이 없으면 문화도 없습니다. 문화를 가장 위협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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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교수 서경덕의 집념
“‘니가 뭔데, 미쳤군, 제정신이야.’ 200여 개 기업과 정부 기관에 드나들며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었던 말입니다. 뉴욕 현대미술관과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한국어 음성 안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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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화가 오치균의 ‘孤虎’
“몸, 왜소합니다. 사회성, 세상과 어울리지 못합니다. 공황장애로 다리가 마비되기도 했습니다. 남 보다 몇 배 우울하고 몇 배 더 외로운, 콤플렉스 덩어리입니다. 제 스스로 세상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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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인간 차동엽의 선택
“쌀과 연탄 배달을 시작한 게 열한 살 무렵입니다. 난곡 달동네의 빈한한 삶, 공업고등학교 등록금조차도 어려웠습니다. 자격증과 공부,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발버둥쳤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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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책세상 꿈꾸는 도정일
“울산, 고성, 마산, 부산. 어린 시절 전쟁을 피해 다니며 산 곳입니다. 그렇게 다니며 보고 겪은 잔혹한 삶. 그때의 편린을 통해 삶의 가치와 의미가 회복된 사회를 꿈꾸게 되었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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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저잣거리 화가 임옥상
“전속작가로 양육되는 건 예술가의 삶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. 이 고리를 끊어야 했습니다. 상품을 만드는 데서 나를 구제해야 했습니다. 저잣거리로 나왔습니다. 틀을 벗어나니 예술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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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저잣거리 화가 임옥상
“전속작가로 양육되는 건 예술가의 삶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. 이 고리를 끊어야 했습니다. 상품을 만드는 데서 나를 구제해야 했습니다. 저잣거리로 나왔습니다. 틀을 벗어나니 예술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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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시인 문정희 존재의 이유
“빠른 속도, 팽배한 물량가치의 세상에서 시를 쓴다는 건 딱 빌어먹기 좋습니다. 외로우며 고통스럽습니다. 바득바득 이를 갈며, 절절함으로 버티며 시를 고집해 왔습니다.시는 나의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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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감독 이장호를 키운 아픔
“어쩌다 핀 대마초 한 개비, 영화감독 자격이 정지됐습니다. 벼락 스타에서 실업자로 전락하는 데 하루 아침이면 족했습니다. 나락에 떨어져 보니 빈한한 삶들이 보였습니다. 제가 살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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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인생 코치 김미경의 ‘균형’
“강사의 삶도 불안정한 데다 독설로 남 가르치기까지 하니 외줄 타듯 살아온 셈입니다. 강의하는 사람 이름이 연예인 뉴스에 오르내리는 삶, 적어도 제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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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무용 외길 50년, 국수호
“측량을 배우라는 아버님의 권유로 입학한 농업고등학교. 농악소리에 이끌려 농악대에 들어갔습니다. 반세기 춤 인생 행로는 거기서 비롯됐습니다. 열여섯에 시작해 예순여섯이니 딱 오십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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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다큐 사진가 권철의 시선
“히라가나도 모른 채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. 한국인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 한 마리의 늑대가 되어야만 했습니다. 도쿄(東京) 환락가 가부키초(歌舞伎町)의 민낯과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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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고난 이긴 한비야의 손
“중 2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. 학교 칠판에 ‘등록금 안 낸 사람’으로 매번 이름이 적힐 정도로 가난했습니다. 고교 졸업하자마자 뛰어든 생활전선. “‘고졸 주제에’ ‘네까짓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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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교수 이광형의 버리고 살기
“이기적이었습니다. 매사 이해타산을 따졌습니다. 그러니 학문과 연구도 나만을 위한 것이었습니다. 13년 전, 300억원의 기부금을 받아 KAIST에 바이오 및 뇌공학과 설립을 추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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[권혁재 기자의 不-완벽 초상화] 신학자 현경의 새 길 찾기
“박사·교수·여성 더구나 신학자로서 이혼을 한다는 건 너무 힘든 고통이었습니다. 일생 이룬 꿈을 한순간에 버리는 일이었습니다. 우울증이 왔습니다. 치유 과정에서 불교선사, 정신분